이미지와 생명의 기원: ‘안’도 ‘바깥’도 아닌

 

 

우리가 눈으로 지각하는 모든 사물들은 아무 것도 통과할 수 없는 벽과 같이 견고하게 보인다. 하지만 소립자의 세계에서 보면 벽과 같이 견고하게 보이던 사물의 표면들은 사라지고 텅 빈 공간과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의 소립자들만 보이는 것이다.

사물과 생물체의 경계는 그러한 소립자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우리의 눈으로 지각하는 세계와는 다르다. 소립자의 시선에서 보면 “미시세계에서는 관찰대상에 관찰행위가 분명히 영향력을 미친다.”고 말하는 것처럼 관찰자와 관찰대상은 우리의 눈으로 지각하는 세계에서 보는 것처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미지와 생명의 기원: ‘안’도 ‘바깥’도 아닌” 전시는 인간의 실존을 중심으로 생명의 실체에 접근하는 작업들과는 달리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 생명의 실체를 탐구하고 있다. 이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면 생명의 관점을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 탐구하고 있으며, 보다 확장해서 보면 소립자의 관점에서 사물과 생명체들을 바라보는 관점들을 연상시키고 있다.

강진모의 작업은 “도구화된 지식에 대한 경고, 이성이나 과학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예술의 언어이며, 음양의 충돌 또한 자연과 인간들을 향해 가해온 약육강식의 논리가 충돌하고 있는 지구의 현재를 은유한 것이라고”(최태만, 미술평론가) 말한 것처럼 나무로 조각된 동물이 벽면에 걸려있는 사슴뿔을 바라보는 형상을 통해 생명을 대하는 현재의 패러다임을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김정희의 작업은 복잡하게 펼쳐져 있는 그 구조들이 소립자들의 움직임들과 같으며, 구조들 중간에 있는 형태들은 그러한 소립자들이 하나의 입자로서 만들어내는 형태들과 같은 것이다. 형태들은 우리의 시각에서 보이는 사물들과 생명체들을 의미하는 것이며, 생명은 그러한 보이지 않는 구조들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재효의 작업은 “이재효의 설치작업은 자연의 내적/외적구조를 원과 직선을 중심으로 포괄하고 있다. 자연의 순환구조와 반복양상을 단순하면서도 함축적으로 반영한다. 자연의 원만함과 무한함, 생성과 소멸, 고정되어 있지 않고 움직이는 속성을 현재적 파노라마 시점으로 담았다.”(박천남, 前 성곡미술관 학예실장)고 말한 것처럼 자연의 사물들을 고정된 것이 아닌 움직이는 관점으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조각 형상은 소립자들의 움직임으로 사물을 재구성한 것처럼 사물의 형상들이 꽉 차 있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비워져 있는 형태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전용환의 작업은 “작품을 이루는 띠와 선, 한난 계열의 색조 같은 구성요소들은 물질적 요소이자 그 자체가 공간적 성질을 띠고 있다. 그것은 늘었다 줄었다하는 신축적인 시공간상을 보여주면서 우주가 무로부터 펼쳐질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기호화한다. 그의 작품에서 시간은 상대성 이론처럼 공간의 다른 차원이 된다.”(이선형, 미술평론가)고 말한 것처럼 시간의 흐름을 통해 형상화되는 사물의 실체를 그려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그의 조각 작품은 비어있는 공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사물과 모든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우주의 법칙을 상징화하고 있는 것이다.

박민섭의 조각은 “아버지를 황소에 빗대어 표현한 작업이다. 하지만 황소는 얼기설기 짜 맞춘 구조가 황소이면서 또 다른 집 같다. 집은 몸이고 존재의 메타포다. 몸에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나 몸이 곧 집이라고 하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고재로 만든 황소에는 바로 이런 존재의 메타포가 깃들여 있다.”(고충환, 미술평론가)는 말처럼 황소를 통해 아버지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다. 즉 그의 조각 작업은 황소로 비유되는 아버지의 모습이지만 그가 비유하고 있는 소의 이미지는 또한 “나와 남, 나와 자연 그리고 나와 우주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기(氣)의 실체”와 같은 것이다.

신한철의 작업은 “숭숭 뚫린 구에서 발견된다. 전체에 구멍이 뚫려 표면뿐 아니라 내부까지 대기로 채워진 구. 그 속에서 신한철은 물성의 극복을 자연스럽게 실험하면서 비조각적인 방식을 취한다. 구멍을 뚫어 속이 비치니 내 마음까지도 시원하다.”고 말한 것처럼 꽃과 같이 증식된 스텐리스 형상을 통해 작품을 보고 있는 자신을 투영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달리 말해 물리적인 감각 너머로 시선을 향하게 함으로써 사물을 보는 눈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안병철의 작업은 스텐리스 소재로 제작한 알과 같은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조각 작업은 “씨앗은 생성과 소멸이라는 이중성 속에서 기능한다. 작가는 바로 이 씨앗의 이중성을 절묘하게 조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임성훈, 미술평론가)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씨앗과 같이 형상화된 스텐리스 작업을 통해 주변 세계를 투영시키며 생명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태석의 작업은 “부유하는 이미지로서의 나무들은 ‘우리가 보는 건 원래가 허상이다’라는 작가의 기호를 대변하는 것이다. 즉 그의 작업은 관찰하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본질과 일루전을 교차적으로 제시한다.”(정연심, 미술평론가)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물리적인 시각 너머의 자연의 실체를 표현하려고 하고 있다.

전지연의 작업은 “인간과 신, 자연과 문명,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담는다. 원뿔형태의 얼개구조는 자아를 담으며, 관계의 얽힘을 표현하고 있다. 가깝게는 가족과 일상의 관계에서부터 자연, 나아가 절대자 그리고 나와의 내적관계까지도 포함한다. 그의 작업은 수많은 의미의 찰나가 모여 무정형의 얼개들을 만들어낸다.”(이유미)고 말한 것처럼 인간에서 자연으로 이어져 있는 관계의 망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듯 “이미지와 생명의 기원: ‘안’도 ‘바깥’도 아닌” 전시는 9명의 작가들을 통해 물리적 감각 너머로 탐구해가는 생명의 실체에 대한 탐험이다. 이 전시는 우리가 일상으로 보는 사물들을 소립자의 세계의 시선과 같이 바라보는 시간이 될 것이며, 사물의 실체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서 사색해 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조관용(미술과 담론 편집장)